사랑에 빠진 주인공이 ‘사랑’을 정의하려 애쓰고 있다.
아래는 그렇게 해서 나온 것.
사랑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자나 깨나 그 사람 생각이 떠나지 않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며,
몸부림치고 싶어지는 마음의 상태.
이루어지게 되면,
하늘에라도 오를 듯한 기분이 된다.
일어를 전혀 몰라서 자막을 받아 적었다.
사랑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자나 깨나 그 사람 생각이 떠나지 않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며,
몸부림치고 싶어지는 마음의 상태.
이루어지게 되면,
하늘에라도 오를 듯한 기분이 된다.
<중앙경제신문>이라는 언론사에 오홍근이라는 기자가 있었어. 그는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을 여러 편 게재한 뒤 누군지 모를 사람들의 협박을 받아왔어. 특히 ‘청산해야 할 군사 문화’, 즉 그때껏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군대의 폐단을 대놓고 공격한 며칠 뒤 출근길에 누군가 오홍근 기자를 불러 세웠고 주먹이 날아들었어. 오 기자가 깨보니 병원이었는데 허벅지에는 길이 30㎝의 칼자국이 나 있었지.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어. 하지만 아파트 곳곳을 순시하던 경비원이 며칠 전부터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는 외부인의 포니2 승용차를 눈여겨보고 있었고 자동차 번호까지 적어두었던 거야.
차량 소유주는 놀랍게도 국군 정보사령부였어. 자동차 색깔까지 바꿔 칠하고 근무일지를 조작하는 등 발뺌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범인이 잡혔지. 역시 정보사령부 요원들이었어. 처음에는 오홍근 기자의 기사를 본 부대원들이 분노하여 독자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했지만 수사 결과 장군들을 비롯해서 높은 사람들이 개입하고 지시한 일로 밝혀졌어.
그런데 군법 재판부는 “범행 동기가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군을 아끼는 충정에서 비롯됐고,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가볍기 때문에 이를 참작해 집행유예와 선고유예 판결”을 내려버려. 정보사령관은 제대 후 한국중석이라는 공기업 사장으로 갔고 테러범 대부분은 정보사령부에 복귀하게 돼.
더하여 아빠가 두려워하는 것은 변변치 못한 개인의 일탈 행위를 빌미로, 한 국가가 자신을 거스르는 이들을 쓸어버리는 깡패로 변신하는 역사의 재연이란다. 비슷한 일, 아니 거의 똑같은 일이 1933년 2월27일 독일에서 벌어졌거든. 독일 국회의사당에서 불이 났고 현장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판 데어 루페라는 자가 방화 도구를 지닌 채 체포됐어. 그는 공산당 가입 경력이 있었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청년이었지. 그가 방화에 책임이 있는 건 거의 확실하지만 공산당이 조직적으로 이 방화를 벌인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어. 하지만 히틀러와 나치당은 이 사건을 ‘공산당의 음모’로 몰아붙이면서 공산당을 범죄 집단으로 규정했고 독일 헌법정신을 짓밟는 비상사태법을 선포하도록 분위기를 주도해갔지. “어떤 목소리가 나로 하여금 독일 노동자의 비참한 처지에 항의하기 위해 의사당에 불을 지르라고 했다”라는, 확실히 비정상적인 청년 루페는 대역죄인으로 참수됐고 말이야.
대법원은 2010년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이라고 선고하면서 “긴급조치가 유신헌법 53조에 근거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본질을 침해했으며 당시 국가가 중대한 위기상황이거나 국가안전에 직접 위협을 받을 때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최씨는 이 같은 판결 이후 2011년 4월 박 전 대통령과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고통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며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개개인의 권리에 법적 의무를 지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긴급조치의 내용이 사후에 위헌·무표로 선언됐다고 하더라도, 이는 대통령의 ‘고의나 과실행위’에 따른 국가배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도 너라는 또 다른 갈림길에서
멈춰서 발을 떼지 못하네
어느 쪽을 가든 늘 후회하지 않았나
다른 쪽 길을 걸어보지 않은 우리는
미련 아니면 후회였고
시작 아니면 끝이었던
네가 아니면 내가 아닌
시간들 속에 멈춰있던
나는 여전히 원래 그랬던 사람처럼
막다른 갈림길에 그냥 서 있을 뿐
우리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
어느 날 불같은 사랑을 했고
처음에 우리는 그들이 제안하는 모든 것을 수락했습니다. 운 좋게도 그런 식의 대처가 제대로 먹혔습니다. 그들이 자신이 바라는 바를 공식 계약으로 써내는 속도보다, 우리가 프로그래밍하는 속도가 빨랐으니까요.
인수합병! 우리가 늘 꿈꿔왔던 것이죠. 더는 돈 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저기 어떤 회사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저희는 그냥 부자가 되기만 하면 되는 것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많은 이가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그냥 호기심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이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많은 사람은 자신이 그 분야를 충분히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이들이 이미 할 수 있는 것은 다 시도해봤으리라 믿고, 그냥 시도를 포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방법을 정말 아는 사람은 드물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이들은 더욱 드뭅니다. 그러니까 만약 여러분이 무언가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꽤 잘해낼 것입니다.
지난 몇 해 동안 한국에서 발간된 책 가운데 가장 파렴치한 책을 꼽는다면 단연 <아프니까 청춘이다>일 것이다. ‘청년의 지옥’이라 불리는 사회에서 기성세대의 한 사람이 청년에게 할 첫 번째 말은 ‘미안하다’여야 한다. 좀 더 사리분별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실을 바꾸자, 나도 함께하겠다’여야 한다. 그런데 아프니까 청춘이라니. 게다가 저자 김난도는 이른바 소비 트렌드의 권위자로서 매년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을 내는 사람이고 고급호텔에 사장들을 모아놓고 올해의 장사거리에 관한 세미나와 특강을 하는 사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행태 자체를 비난할 건 없겠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동시에 소비는커녕 생존 자체가 암담한 청년들에게 그런 설레발을 친다는 건 섬뜩한 일이다. 어찌됐든 그는 청년들의 멘토로 군림했고 제 책을 300만부 넘게 팔아치웠다.다행스러운 건 청년들이 더는 그런 유의 설레발을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혜민이라는 중은 얼마 전 제 페이스북에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자기 중심이 없어서라느니 따위 이야기를 했다가 격렬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으로 큰돈을 벌고 유력한 문화자본가가 되었는데 이 또한 김난도의 것 못지않게 기막힌 책이다. 저야 미국 대학의 교수에 중이니 삶의 번민이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멈추고 정리하면 되겠지만, 멈추고 싶어도 도무지 멈출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에게 그게 어디 할 말인가. 총각네 야채가게 사장 이영석은 몇 해 전 낸 책 <인생에 변명하지 마라>에 적은 ‘일을 가르쳐주는데 내가 돈을 받아야지 왜 주는가’ 따위의 내용이 새삼스레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언급한 세 책들이 근래 출판시장에서 가장 약진했다 평가받는 한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며, 이 사회를 한때 휘어잡은 어떤 정신적 파행을 드러낸다.어찌됐든 광장에 세워져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모자랄 파렴치한과 철딱서니들이 청년들의 멘토로 군림하며 그 얇은 지갑을 터는 일은 어려워지고 있다. 청년들의 의식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열정페이라는 이름의 노동 착취로 비난을 받고 사과를 한 건 물론, 조기숙씨는 갑질하는 고객 앞에서 무릎 꿇은 주차 알바 청년이 청년답지 못하다고 했다가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주목할 것은 그런 변화들이 불과 1~2년 사이에 급격하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더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감추고 분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실 열거한 멘토들이 파렴치함을 넘어 사악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건 그들이 부도덕한 사기행각으로 치부한 걸 넘어 청년들에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도했든 안 했든 체제의 충직한 주구 노릇을 해왔고 그들의 영예와 안락은 그 대가였던 셈이다.
목멱산(남산) 아래 어떤 바보가 살았다. 말을 잘하지 못해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성품이 게으르고 졸렬하여 세상일을 알지 못했으며, 바둑이나 장기는 더욱 알지 못했다. 남들이 욕을 해도 따지지 않았고, 칭찬을 하여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오직 책을 보는 것만 즐거워하여 추운 줄도 더운 줄도 배가 고픈 줄도 몸이 아픈 줄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손에서 하루라도 책을 놓은 날이 없었다. 그의 방은 매우 작았지만 동쪽, 남쪽, 서쪽에 창문이 있어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 해가 가는 방향을 따라 밝은 곳에서 책을 보았다. 보지 못한 책을 보기만 하면 기뻐서 웃었으므로 집안사람들은 그가 웃는 것을 보고 그가 진기한 책을 구한 줄 알았다. 두보의 오언율시를 아주 좋아하여 아픈사람처럼 끙끙대며 읊조리다가 심오한 뜻을 깨달으면 매우 기뻐하여 일어나 왔다갔다하였다. 그 소리가 마치 갈가마귀가 우는 것 같았는데, 어떤 때는 조용히 아무 소리 없이 눈을 크게 뜨고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때는 잠꼬대 하는 것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런 그를 보고 간서치라 놀렸지만 기쁘게 받아들였다.